이름 속의 고향

돈 키호테의 이름에서 ‘돈’은 존칭이고, ‘데 라만차’는 라만차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이름처럼 기억하는 말 속에 호칭과 고향이 함께 들어 있는 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 빈치(da Vinci)’는 ‘빈치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성처럼 익숙하게 쓰이지만, 이 이름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빈치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하자면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입니다.

스페인어의 ‘데 라만차’와 이탈리아어의 ‘다 빈치’는 서로 다른 언어의 표현이지만, 사람의 이름에 지명을 붙여 출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라만차의 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만든 인물이고, 빈치의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 기사 이름을 지었고, 다른 사람의 이름에는 고향이 남았습니다.


피렌체의 공방

레오나르도는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빈치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증인 피에로였고, 어머니의 이름은 카테리나였습니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 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 배웠습니다. 그곳에서의 배움은 그림 한 장을 그리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형태와 움직임,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는 일이 그의 작업의 바탕이 됩니다.

훗날 그의 관심은 인체와 식물, 물의 흐름, 기계와 건축으로 넓어집니다. 오늘날의 분류로는 화가의 일과 과학자의 일이 갈라져 보이지만, 그의 기록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려면 몸을 알아야 했습니다. 표정을 그리려면 얼굴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습니다. 빛을 그리려면 그림자가 생기는 방식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에게 관찰과 그림은 서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제단화

레오나르도에 관해 자주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대한 천재였지만 그림을 끝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는 완성작이 전혀 없는 화가가 아닙니다. 완성해 공개된 작품도 있고, 작업을 중단한 그림도 있으며, 여러 해 동안 곁에 두고 고쳐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이 서로 다른 사정을 모두 같은 미완성으로 묶으면 그의 작업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미완성작은 〈동방박사의 경배〉입니다. 피렌체의 산 도나토 아 스코페토 수도원은 1481년 그에게 제단화를 주문했습니다. 계약상 완성 기한은 30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났고, 그림은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았습니다. 후에 같은 자리를 위한 제단화는 필리피노 리피가 따로 그리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단의 배경은 이동과 새로운 활동입니다. 모든 미완성작을 그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작품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수정할 시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작한 〈최후의 만찬〉은 1498년 무렵 완성된 대표작입니다.

이 그림은 그가 왜 오래 작업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완성과 보존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 위에 그립니다. 벽이 마르기 전에 작업해야 하므로 시간을 끌기 어렵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마른 벽 위에서 천천히 그리며 이미 그린 부분도 수정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빛과 색을 세밀하게 다듬을 시간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벽에 놓인 물감은 프레스코보다 취약했고, 환경 조건까지 겹치면서 완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상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그림이 훼손됐다는 사실과, 처음부터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은 다릅니다. 〈최후의 만찬〉은 완성한 작품이지만, 그가 선택한 실험적인 기법은 보존에 어려움을 남겼습니다.

그에게는 그림을 마칠 시간만큼, 다시 손댈 수 있는 시간도 중요했던 듯합니다. 적어도 이 작품의 제작 방식은 그렇게 읽을 근거를 제공합니다.


모나리자의 시간

〈모나리자〉를 두고도 비슷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완성된 명화처럼 감상하지만, 화가 자신은 어느 순간에 붓을 놓았을까요.

루브르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며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루브르의 2019년 전시 자료는 말년의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와 〈성 안나〉, 〈세례자 요한〉처럼 오랫동안 작업해 온 그림들을 곁에 두고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이 자료는 그가 단지 처음 떠오른 생각에만 관심을 갖고 실행을 싫어한 사람이었다는 설명과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회화에 관한 탐구가 오래 이어지는 제작 과정 자체에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방박사의 경배〉처럼 제작이 중단된 그림과, 〈모나리자〉처럼 오래 간직하며 다듬은 그림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후원자에게는 납품일이 필요했습니다. 화가에게는 아직 바꾸고 싶은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완성이라는 말의 뜻이 양쪽에서 언제나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방 밖의 세상

그의 작업을 바꾼 것은 성격이나 호기심만이 아니었습니다.

1499년 프랑스군이 밀라노를 점령하고 후원자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권력을 잃으면서, 레오나르도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기반도 흔들렸습니다. 그는 피렌체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여러 도시를 오갔습니다.

화가의 시간은 후원자와 계약, 전쟁과 정권 교체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새 일자리가 생겨 떠나기도 했고, 자신이 머물던 질서가 무너져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해부학과 광학, 물과 운동을 연구했습니다. 그림 밖으로 뻗어 나간 관심은 제작에 쓸 시간을 나누었을 것이지만, 동시에 그림을 더 깊게 이해하는 바탕도 됐습니다. 그 관심을 모두 산만함으로 부르거나, 모두 천재성으로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남은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작업과 이동, 연구입니다. 그것만으로 수백 년 전 인물의 정신 상태를 오늘날의 진단명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고향

1516년, 레오나르도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갔습니다. 빈치에서 출발해 피렌체와 밀라노, 로마를 거친 삶이었습니다.

그는 1519년 5월 2일,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예순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로잉과 노트는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남겼습니다. 남겨진 기록은 그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끝내 알아보고 싶어 했는지도 보여줍니다.

레오나르도가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긴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더 고치려는 작업 방식과 폭넓은 연구가 있었고, 이동과 후원의 변화, 전쟁도 있었습니다. 어떤 작품은 완성됐으며, 어떤 작품은 중단됐고, 어떤 작품은 오랫동안 화가 곁에 남았습니다.

‘다 빈치’라는 이름을 풀면 거창한 수식어 대신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

우리는 그의 이름 뒤에 천재라는 말을 붙이지만, 그가 남긴 종이와 그림에는 답을 얻은 사람의 솜씨와 아직 묻고 있는 사람의 손길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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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호칭

우리는 그를 돈키호테라고 부릅니다.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달려가는 사람. 마른 말 위에서 누구도 보지 못하는 거인과 싸우는 사람. 이름을 듣는 순간 얼굴보다 그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익숙한 이름은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까요.

스페인어로는 ‘돈 키호테(Don Quijote)’입니다. 여기서 ‘돈’은 이름의 일부가 아니라 남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입니다. 여성에게 쓰는 대응 호칭은 ‘도냐(doña)’입니다. 한국어의 ‘님’이나 ‘선생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지만, 역사와 사용법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제 이름은 키호테였을까요.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키호테는 그가 기사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정한 이름입니다. 작품 마지막에 밝히는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에는 존칭과,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라만차의 이달고

‘돈 키호테 데 라만차(Don Quijote de la Mancha)’에서 ‘데 라만차’는 라만차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라만차는 스페인의 지역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라만차 출신의 키호테라는 인물을 높여 부르는 형식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이름난 전쟁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원작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약 오십 세의 이달고, 곧 하급 귀족입니다. 기사도 소설을 읽는 데 빠져 사냥과 재산 관리까지 소홀히 합니다. 책을 사려고 경작지 일부를 팔기도 합니다.

그가 읽었던 이야기 속에는 억울한 사람을 구하고, 악한 세력을 물리치며, 사랑하는 여인에게 영광을 바치는 편력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읽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기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본명조차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서술자는 그의 성을 키하다, 케사다, 키하나 등으로 흔들어 제시합니다. 마지막에 알론소 키하노라는 이름이 명시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신상명세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은 아닙니다.


여드레의 이름

그는 먼저 말의 이름을 정하고, 이어 자신의 이름을 고민합니다. 자기 이름을 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여드레였습니다. 그렇게 붙인 이름이 돈 키호테입니다.

이 대목은 우습습니다. 모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름 때문에 여러 날을 보내는 셈이니까요.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일에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것은, 그에게 모험이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름으로 길을 나서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가 마음에 품은 여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알돈사 로렌소라는 시골 여성을 바탕으로, 그는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상적인 귀부인의 이름을 만들어냅니다. 둘시네아를 처음부터 그와 사랑을 나누는 공주나 연인으로 생각하면 원작과 거리가 생깁니다. 실제 여성과 그가 마음속에서 높이 세운 여인은 구별해야 합니다.

기사의 이름과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갖추자, 그의 세계는 기사도 소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풍차와 거인

풍차와 싸우는 유명한 장면은 1부 8장에 나옵니다. 키호테와 산초 앞에 서른에서 마흔 개쯤 되는 풍차가 나타납니다. 키호테는 그것을 거인으로 봅니다. 산초는 거인이 아니라 풍차이며, 팔처럼 보이는 것은 날개라고 설명합니다.

경고는 소용이 없습니다. 키호테는 공격하고, 결국 풍차에 당합니다.

그다음이 더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간단히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방해하는 마법사가 승리의 영광을 빼앗으려고 거인을 풍차로 바꿨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장면에서 무모한 용기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이상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원문에는 믿음과 다른 증거를 마주했을 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설명을 바꾸는 모습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가 보았던 거인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거인이 있었다는 믿음은 남았습니다.

산초가 없었다면 독자도 그 세계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지 모릅니다. 거인이라는 말 옆에 풍차라는 말을 놓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는 같은 장면을 두 가지 눈으로 보게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만난 사람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돈 키호테』의 1부는 1605년, 2부는 1615년에 출판됐습니다. 두 책 사이에는 십 년이 있습니다.

그사이인 1614년, 아베야네다라는 이름으로 다른 작가가 쓴 속편이 먼저 나왔습니다. 세르반테스의 2부는 이 다른 속편에도 반응합니다. 작품 바깥에서 벌어진 출판의 문제가 작품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더 놀라운 장치도 있습니다. 2부에서 키호테와 산초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두 사람의 모험을 기록한 1부를 읽은 이들이 있습니다.

독자가 읽었던 책이 소설 속에서도 읽힙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과 마주합니다. 스스로 이름을 만든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기 이름과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를 보면 『돈 키호테』를 풍차에 덤빈 우스운 기사의 이야기로만 기억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을 이야기로 바꾸는 사람과, 이야기를 읽고 현실의 사람을 대하는 이들이 한 작품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알론소 키하노

작품 마지막에 주인공은 자신이 돈 키호테였지만 이제는 알론소 키하노라고 밝힙니다. 이때의 이름에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뜻의 ‘엘 부에노(el Bueno)’도 붙습니다.

이 결말을 꿈에서 깨어난 일로 읽을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든 기사라는 정체성을 내려놓는 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름은 작품의 시작과 마지막을 잇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호칭을 떼어내면 키호테가 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마저 스스로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라만차에서 책을 읽던 알론소 키하노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알론소 키하노보다 돈 키호테로 더 오래 기억합니다.

한 사람이 살았던 이름보다, 자신이 되고 싶어 했던 이름이 더 멀리 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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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0월 30일, 뉴욕의 한 기자회견장.

토머스 미즐리 주니어가 기자들 앞에서 액체를 손에 부었습니다. 이어 병을 코 아래에 대고 증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휘발유 첨가제, 사에틸납이었습니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죽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물질이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미즐리는 자신의 몸으로 답했습니다. 잠시 이렇게 접촉하는 것은 해롭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기자들 앞에 선 그에게는 이미 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

전해에 그는 납중독으로 일을 멈추고 플로리다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자기 몸에서는 위험의 증거를 발견했던 사람이, 대중 앞에서는 안전성의 증거가 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믿고 있었을까요.

자신의 발명이었을까요. 아니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의 판단이었을까요.


미즐리는 188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11년 코넬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그는, 훗날 화학 분야에서 이름을 얻습니다. 출발점은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였습니다.

그가 맡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엔진에서 나는 이상 연소 현상, 노킹을 줄이는 일이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엔진의 성능을 높이려 할수록 노킹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찰스 케터링 아래에서 일하던 미즐리와 동료들은 여러 물질을 시험했습니다.

1921년 12월, 그들은 사에틸납을 첨가했을 때 노킹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산업계가 기다리던 성과였습니다. 더 높은 성능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에, 연구원들이 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엔진의 문제를 해결한 물질은 인간의 몸에 다른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1923년 초, 미즐리는 납중독으로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해 2월에는 회복을 위해 플로리다에서 약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때 그는 납의 위험성을 처음 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에틸납의 독성을 경고하는 연락도 이미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즐리는 농축된 물질을 제조하고 취급할 때의 위험과, 소량을 섞은 휘발유를 사용할 때의 위험을 구별했습니다. 전자가 위험하다고 해서 후자까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그가 이후 발표한 글에서도 이런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구별이 대중의 안전을 충분히 입증했느냐는 데 있었습니다.

자신이 잠깐 증기를 들이마신 뒤 멀쩡히 서 있다는 사실로, 수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배기가스를 마셔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둘 사이에는 기자회견 한 번으로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1924년, 뉴저지의 사에틸납 생산 공장에서 심각한 중독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노동자들이 신경계 증상을 보였고,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해 10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즐리는 손에 액체를 붓고 증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위험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개발자가 직접 안전성을 보여주려 한 것입니다.

그 장면은 강렬했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만든 사람이 맨손으로 만지고 숨까지 들이마신다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연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해에 플로리다로 떠났던 연구원의 병력도, 공장에서 쓰러진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노출도, 앞으로 도로 위에서 반복될 배출도 그 짧은 장면 안에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1925년에는 미국 공중보건국 주관으로 유연휘발유의 위험성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산업의 성과는 이제 공중보건의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즐리의 다음 성과는 차가운 곳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냉장고 등에 쓰이던 냉매에는 독성이 강하거나 불이 붙기 쉬운 물질이 있었습니다. 냉장고를 편리하게 쓰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위험이었습니다.

1928년, 미즐리는 앨버트 헨과 로버트 맥너리 등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냉매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프레온-12로 알려진 염화불화탄소, CFC 계열 물질이었습니다.

이 물질은 기존 냉매에 비해 독성이 낮고 불이 잘 붙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와 에어컨을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눈앞의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음식을 차갑게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더운 실내를 식힐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편리함을 얻었고, 미즐리는 뛰어난 연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냉매 연구로 1937년 퍼킨 메달을 받았고, 1941년에는 미국화학회의 최고 영예인 프리스틀리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서 오래 버티던 물질은, 밖으로 새어 나온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안정성의 대가는 훨씬 높은 곳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1940년, 미즐리는 소아마비를 앓아 거동이 어려워졌습니다. 발명가였던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돕는 장치도 고안했습니다.

1944년 11월 2일, 그는 오하이오주의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쉰다섯 살이었습니다. 그해 그는 미국화학회 회장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프레온 냉매는 여전히 중요한 산업적 성과였습니다.

그 냉매가 지구를 감싼 오존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는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1974년, 마리오 몰리나와 셔우드 롤런드는 CFC가 성층권에서 분해되며 염소를 내놓고, 그 염소가 오존을 파괴할 수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미즐리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누출돼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대기 중에서 오래 살아남아 성층권까지 올라갈 수 있는 성질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 곁에서 안전성을 높여준 특성이 먼 하늘에서는 위험의 조건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유연휘발유와 프레온의 역사를 똑같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납의 독성은 미즐리 생전에도 경고됐습니다. 그는 직접 중독을 겪었습니다. 반면 CFC의 오존층 파괴 작용은 그가 죽은 뒤 수십 년이 지나서야 밝혀졌습니다. 두 발명에는 서로 다른 지식과 서로 다른 책임의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미즐리의 생애를 돌아보면, 기자회견장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오릅니다.

자신의 발명을 손에 붓고, 사람들 앞에 서 있던 연구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그가 그날 쓰러지는지 여부만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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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 / 여왕의 한수

여왕의 한수(05) - 다샤푸라의 포위

기 · 북쪽, 열 해

열 해 만에 돌아온 날, 여왕은 사람들을 성 안으로 모은다.

다샤푸라의 포위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열 해 만에 아들이 돌아온 날, 여왕은 또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왕자가 다샤푸라에 들어온 날 성문은 해가 지기 전에 닫혔다. 문지기들은 피란민의 수와 가져온 곡식을 적고, 우물 가까운 자리는 아이와 환자에게 내주었다.

바깥에서는 마지막 가축 떼가 몰려왔고, 성 안에서는 창고를 열라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아린드라는 말에서 내려 수레를 밀었다. 사람들이 왕자의 이름을 알아보고 길을 비키려 하자 그대로 있으라고 손짓했다.

성벽에 오른 아린드라는 멀리 이어진 적의 불빛을 보았다. 별이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지만, 그 불빛 사이마다 사람이 있었다. 불빛 앞에는 코끼리의 등이 낮은 언덕처럼 움직였다.

여왕은 왕자의 붕대를 먼저 보았다. 흰 천에 말라붙은 피와 그 위에 덧감은 새 천의 색이 달랐다.

“다쳤느냐.”

“깊지는 않습니다.”

“보여 다오.”

“회의가 먼저입니다.”

“회의에서 네 상처가 닫히지는 않는다.”

여왕은 붕대의 매듭을 잘라 상처를 확인했다. 가장자리가 붉었지만 고름은 없었다.

그녀는 아들의 팔을 만졌다. 손이 예전보다 거칠고 손목이 굵어져 있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은 그다음에 나왔다. 아린드라도 돌아왔다는 말만 했다. 대전에서 헤어질 때 준비했던 훌륭한 대답은 이번에도 소용이 없었다.

회의에서 수바후는 적에게 금을 주자고 했다. 금과 함께 겨울 곡식 일부를 내주면 바흐람의 여러 군대가 몫을 두고 다툴 것이라고 했다. 다라세나는 그들이 다투기 전에 성문 위치와 병력을 살필 것이라며 구원군이 모일 때까지 버티자고 했다.

아린드라는 두 사람의 말이 끝난 뒤 창고 장부를 요구했다.

“먹을 것이 몇 날 남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금의 양을 정하는 데 곡식 장부가 왜 필요합니까?”

수바후가 물었다.

“우리가 며칠 버틸지 모르면 적이 요구를 올릴 때마다 줄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군을 기다릴 수 있는지도 알 수 없고요.”

장부에는 스무 날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타라가 창고 바닥을 확인하자 아래쪽 곡식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자루를 들자 시큼하고 단 냄새가 올라왔다.

남은 것은 열사흘 분이었다. 군마 사료를 줄이고 쓸 수 있는 곡식을 다시 말렸을 때의 수였다. 여왕의 입술이 하얗게 굳었다. 수바후가 장부를 만든 관리들을 불러 벌하자고 했다.

“먼저 쌀을 옮긴다.”

아린드라의 말에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드라는 마른 자루와 젖은 자루가 섞이지 않게 하고, 타라에게 실제 무게로 새 장부를 만들게 했다. 배급은 다음 아침부터 줄었다. 여왕의 부엌과 병사들의 솥도 같은 비율로 줄이고, 병원과 공동 부엌에는 아이 몫을 따로 두었다.

첫 공성 사흘 동안 바흐람은 성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나루와 외곽 우물을 차지하고, 성 안으로 쏘는 화살에 항복문을 매달았다. 북쪽 요새가 모두 죽었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확인할 수 없는 말이었다.

밤이면 적진에서 망치와 톱질 소리가 이어졌다. 성 안의 목수들은 사다리 길이를 짐작해 긴 장대와 갈고리를 준비했다.

넷째 날에는 사다리가 왔다. 젖은 가죽을 덮은 이동식 가림막 아래서 병사들이 해자를 메웠다.

성벽 위의 돌이 떨어졌다. 인부들은 방패 뒤에 엎드렸다가 신호에 맞춰 일어났다. 사다리 하나가 부러졌지만 옆에서 다른 사다리가 섰다. 아린드라는 칼을 뽑고 올라오는 병사를 밀어냈다. 떨어진 창이 돌에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피가 손등에 묻었을 때 누구의 것인지 몰랐다. 다라세나가 그의 뒤를 막으며 외쳤다.

“아래를 보지 마라! 다음 사다리!”

왕자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성벽에 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칼등으로 손가락을 쳐 떼고 옆의 병사와 함께 사다리를 밀었다. 명령은 떨렸지만 손은 움직였다.

해 질 무렵 북문 앞에 코끼리들이 나타났다. 몸집 큰 짐승들이 문을 향해 움직이자 성 위의 신병 하나가 창을 놓쳤다. 아린드라는 그를 꾸짖지 않고 여분의 창을 건넸다.

“내 손도 떨린다. 그러니 창을 벽에 받쳐.”

신병은 두 손을 바꾸어 쥐었다. 아린드라는 창끝이 기수의 높이를 향하도록 각도를 낮춰 주었다.

밤의 공격은 북문에 집중되었다. 북과 코끼리의 울음 때문에 동쪽에서는 작은 소리가 묻혔다. 아린드라는 그 소란 뒤에서 동쪽 배수로를 살폈다. 낮에 벽돌 세 단 아래였던 물이 한 단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을 담그니 흐르지 않고 미지근했다. 적이 바깥 수로를 막고 있었다. 물이 더 차면 성벽 아래의 오래된 흙이 풀릴 터였다.

함께 온 석공은 새벽까지는 버틴다고 했다. 북문에 사람을 더 보내면 배수로가 무너지고, 수문에 사람을 빼면 문이 먼저 터질 수 있었다.

그는 열아홉에 보았던 수로 장부의 여백을 떠올렸다. 폐쇄 표시가 난 낡은 수문과, 버려진 절 우물로 이어지는 샛길. 열 해 동안 바뀌었을 수 있어 타라의 최신 기록과 대조했다. 지도 두 장에서 같은 자리에 남은 돌길이 있었다. 그는 여왕에게 결론만 허락받으려 하지 않고 지도를 펴 보였다.

“이곳을 열어야 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여왕은 ‘안 된다’고 하려다가 지도를 보았다.

“네가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라.”

아린드라는 수문까지 가는 길, 물을 뺐을 때 성 안 낮은 구역이 잠길 가능성, 북문에서 병사 열둘을 빼는 위험을 설명했다.

“수문이 열리지 않으면?”

“받침목과 석공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사람부터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너도 포함해서다.”

아린드라는 잠깐 답하지 못했다. 실패한 뒤에도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임무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예.”

여왕은 다 듣고 나서 석공 둘과 병사 열둘을 붙였다. 물이 흐를 동쪽 길을 비우라는 명령은 타라에게 맡겼다. 이번에는 아들의 하루를 정하는 손이 아니라, 그가 하려는 일을 함께 준비하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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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 북쪽, 열 해

열 해 전, 여왕은 판을 놓고 이기면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여왕의 조건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여왕의 조건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그 편지에 명령이 없었던 이유를, 그는 열 해 전 대전에서 들었다.

대전 한가운데 낮은 탁자가 놓였다. 시종들은 말 하나가 저절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의 수평을 맞췄다.

탁자 위에는 여덟 줄씩 가로세로로 나눈 나무판과 두 무리의 말이 있었다. 흰 말은 강가의 밝은 목재로, 짙은 말은 오래 말린 나무로 깎았다. 모양은 왕, 신하, 코끼리, 말, 전차, 보병이었다. 새 나무와 밀랍 냄새가 향 연기 사이에서도 났다.

궁정의 목공 케샤바가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젊어서 전차 바퀴를 만들다가 잃었다고 했다. 그는 남은 손가락으로 판의 네 귀를 차례로 눌렀다. 나무가 습기를 먹어 휘지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보는 손길이었다.

“장군들의 모래판을 작게 옮겼습니다. 말이 움직일 길을 정해 두면, 누구든 같은 조건에서 생각을 겨룰 수 있습니다.”

다라세나가 전차 말을 들어 무게를 살폈다. 케샤바는 같은 종류의 말은 높이뿐 아니라 무게도 비슷하게 맞추었다고 했다.

“어느 지방의 규칙을 따른 것이냐?”

수바후가 묻자 케샤바는 판 가장자리를 쓸었다.

“한 지방 것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이 두는 법과 병영의 연습을 섞어 이 궁정에서 시험할 수 있게 줄였습니다. 오늘 정한 길도 불편하면 다음 판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왕은 시험 중인 판을 아들에게 줄 새로운 과제로 삼았다.

“네가 이기면 떠나도 좋다.”

대전에 모인 대신들 사이에서 옷감 스치는 소리가 났다. 재상 수바후는 왕자가 궁정을 떠난다는 말보다 후계자가 승부로 허락을 얻는다는 형식을 먼저 걱정했다.

“전하, 나라의 의무를 놀이에 걸 수는 없습니다.”

“의무를 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른 공부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여왕은 아린드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린드라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요?”

“네가 배우고 싶은 곳으로. 스승도, 공부할 책도 네가 고르거라. 내가 사람을 붙여 하루를 정하지 않겠다.”

그 말은 호위도 비용도 끊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여왕은 호위의 수와 여비는 국고가 정하되, 어느 스승 아래 얼마나 머물지는 아들이 정하게 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수바후가 그 문장도 기록해야 한다는 듯 타라를 바라보았다.

대신 아린드라가 지면 앞으로 세 해 동안 여왕이 정한 군사 교육을 따르기로 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훈련장, 오후에는 군정 회의, 철마다 국경 순시였다. 아린드라는 판보다 어머니를 오래 보았다. 세 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왜 하는지 잊게 될까 두려웠다.

“제가 떠나 있는 동안 나라의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십시오.”

“어떤 일까지 말이냐. 창고 하나가 비어도? 국경에서 말 한 필을 빼앗겨도?”

“어머니께서 제가 여기 있다면 알게 하셨을 일은 모두요.”

“그 소식을 듣고 네가 돌아올지는 누가 정하지?”

아린드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떠날 자유를 얻고도 매번 어머니의 판단을 기다린다면 장소만 달라질 뿐이었다.

“자유를 달라면서 내 명령도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명령 말고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돌아올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무례함보다 책임이 먼저 느껴졌다. 여왕도 그 차이를 들은 듯 눈썹을 조금 내렸다.

여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을 기록하라는 손짓을 했다. 타라가 갈대 펜을 들었다. 왕자의 조건까지 적으려 하자 재상 수바후가 손을 내밀었다.

“필요 없는 문장이다.”

“말씀하신 것은 적어야 합니다.”

타라가 조용히 말했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재상은 손을 거두었다. 타라는 ‘소식을 보낸다’와 ‘돌아오라 명하지 않는다’를 나누어 적었다. 먹이 마르기 전에 수바후가 다시 읽어 보았지만 지울 곳을 찾지 못했다.

말의 길은 그 자리에서 하나씩 합의했다. 전차는 막히지 않은 곧은 길을 달리고, 말은 굽은 걸음을 뛰며, 신하는 왕 곁에서 짧게 움직이기로 했다. 다라세나는 북쪽 병영에서 코끼리를 다르게 움직였다고 말했다. 케샤바는 코끼리 말 밑에 새긴 표시를 보여 주며 이번 승부에서는 이 길을 쓰자고 했다. 타라는 다른 판의 규칙과 섞이지 않도록 ‘대전의 판’이라고 제목을 붙인 뒤 막힌 길과 말을 잡는 법까지 받아 적었다.

아린드라는 보병 하나를 끝줄까지 밀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케샤바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하지 않은 규칙은 승부 전에 정해야 합니다.”

여왕이 말했다.

끝에 닿은 보병은 잡힌 같은 편 말 가운데 하나로 바꿀 수 있다고 합의했다. 타라가 그것도 조건 아래에 적었다.

“사흘 뒤에 둔다.”

여왕은 짙은 왕을 집었다. 아린드라가 어릴 때부터 만지던 나무 인형보다 작았다.

“사흘이면 충분하겠느냐?”

“규칙을 배우기에는 충분합니다.”

“나를 이기기에도?”

아린드라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건 두어 봐야 압니다.”

여왕은 짙은 왕을 제자리에 놓았다. 말이 판에 닿는 소리가 작고 단단했다.

“연습 상대는 네가 구해라. 단, 내 수를 엿본 사람에게는 묻지 마라.”

“어머니도 연습하실 겁니까?”

“그것도 두어 보면 알겠지.”

그날 오후 소문이 장터까지 퍼졌다. 책벌레 왕자가 여왕에게 나라 밖으로 나갈 허락을 걸었다는 소문이었다. 주막에서는 누가 먼저 질지 돈을 걸었다. 여왕의 패배를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궁전에서는 타라와 수바후가 말의 수를 함께 세고 상자를 봉인했다. 승부 뒤에 어느 쪽도 바뀐 말을 탓하지 못하게 하는 절차였다.

케샤바는 빈 탁자를 닦다가 타라에게 말했다.

“말을 다 깎아 놓으니 사람이 하나 부족하구나.”

“무슨 사람요?”

“판 밖에서 말을 치우는 사람.”

“잡힌 말을 말합니까?”

“잡힌 것과 버린 것은 다르지. 두는 사람은 앞만 보느라 자기가 무엇을 없앴는지 잊을 수 있어.”

타라는 그 문장을 조건문 아래에 적었다. 아직은 어디에 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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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 북쪽, 열 해

떠난 지 열 해째, 명령 없는 편지가 도착하고 왕자는 귀환길에 싸운다.

돌아오는 길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돌아오는 길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떠난 지 열 해째 되는 해, 명령이 없는 편지가 마가다에 닿았다.

여왕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아린드라는 약초를 씻고 있었다. 손을 닦지 못한 채 봉인을 뜯어 종이에 물이 번졌다. 북쪽 요새, 열두 마리의 코끼리, 확인되지 않은 생존자. 명령문은 없었으나 어느 문장도 머물러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줄을 읽고 나서야 의자에 앉았다.

편지를 가져온 역졸의 말에는 소금기 밴 땀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역졸은 두 번 말을 갈아탔고 마지막 나루에서는 군사들이 배를 먼저 가져갔다고 했다.

바수미트라는 짐을 싸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가려느냐?”

“예.”

대답은 빨랐지만 아린드라의 손은 편지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떠날 때 어머니에게 나라의 소식을 달라고 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이제 소식을 받았으니 선택도 자신의 몫이었다. 돌아가면 공부를 끝내지 못하고, 남으면 편지의 빈칸에 들어갈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지 몰랐다.

“배움이 끝났느냐?”

아린드라는 젖은 편지를 접었다.

“가서 모르는 것을 만나겠습니다.”

바수미트라는 젖은 약초를 다시 물에 담갔다. 서둘러 말리면 뿌리가 갈라져 약효를 잃는다고, 아린드라가 어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네가 없으면 이건 누가 건지지?”

아린드라는 옆에 선 어린 학생에게 시간을 일러 주었다. 스승은 그 대답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길 앞에서도 하던 일을 다른 손에 제대로 넘기는지 보려 한 것이었다.

그는 책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다. 수로 장부의 사본, 약재 목록, 타라의 기록만 골랐다. 함께 공부하던 학생 둘이 의약품을 들고 따라나섰다. 스승은 빈 종이를 한 묶음 주었다.

“모르는 것을 만나면 이름부터 붙이려 들지 마라. 본 것과 짐작한 것을 나누어 적어라.”

아린드라는 어머니도 편지에서 그렇게 했다는 말을 삼켰다. 스승에게 절한 뒤 그는 답장을 역졸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 품에 넣었다. 자신이 답이 되어 돌아가는 편이 빨랐다.

서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반대로 걸어왔다. 아이를 등에 업은 아버지가 보였고, 끈 끊어진 소를 찾아 되돌아가는 여자도 있었다. 피란민들은 왕자의 이름보다 어느 나루가 열렸는지를 먼저 물었다. 아린드라는 아는 길만 말하고, 안전을 확인하지 못한 길에는 표시를 해 주지 않았다.

어느 마을에서는 적이 독을 풀었다는 소문 때문에 우물이 흙으로 막혀 있었다. 아린드라는 남은 물의 냄새를 맡고 그릇 바닥을 살폈다. 독을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흙 아래 샘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반나절을 써서 사람들과 우물을 팠다. 맑은 물이 고이자 끓인 물을 자신이 먼저 조금 마셨다.

타라는 물었다.

“이러다 늦으면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늦었어. 더 늦추고 갈 수는 없어.”

그 말이 늘 옳을 수는 없었다. 우물을 다시 쓰게 만든 뒤 그들은 밤길을 달려야 했다. 말 하나가 다리를 절었고 약품 자루 하나가 진창에 빠졌다. 자루를 건졌을 때 붕대 절반이 젖어 있었다. 아린드라는 쓸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달빛 아래 직접 나눴다. 자기가 고른 일의 값은 다른 사람에게만 치르게 할 수 없었다.

나흘 뒤, 북쪽 나루를 돌아가던 피란민 무리를 적의 정찰 기병 여덟이 따라붙었다. 아린드라는 수레를 버리고 달아나라는 말을 하려다가 지형을 보았다. 왼쪽은 낮은 제방, 오른쪽은 수확이 끝난 밭이었다. 제방 아래에는 비를 받은 수로가 있었다.

그는 수레 두 대를 비스듬히 세워 길을 좁히고 바퀴 아래에 돌을 괴었다. 피란민들에게는 수로 건너 갈대밭에 엎드리라고 했다. 활을 쏠 줄 아는 사람은 셋이었다. 왕자를 포함해서였다. 아린드라는 가장 가까이 올 때까지 쏘지 말라고 했다.

첫 화살은 빗나갔다. 아린드라의 손이 얼어 있었다. 다라세나의 목검 아래서는 이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말의 땀과 두려워하는 사람의 냄새. 화살이 흙에 박히자 숨어 있던 누군가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기병들이 그 소리를 듣고 속도를 높였다.

두 번째 화살은 앞선 기병의 방패에 박혔다. 기병들이 양쪽으로 벌어졌다. 오른쪽으로 돌아온 둘은 물기 많은 수로에 발을 빠뜨렸다. 왼쪽의 둘은 제방을 올라오느라 속도가 줄었다.

그 사이 피란민들이 아이부터 건넜다. 타라는 건넌 사람의 수를 세며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노인 하나가 신을 물에 빠뜨리고 돌아가려 하자 그녀가 팔을 잡아끌었다. 신 한 짝을 찾는 동안 뒤의 아이 셋이 건너지 못할 터였다.

아린드라는 마지막 수레 곁에 남았다. 적 하나가 내려서 칼을 들고 달려왔다. 왕자는 목검에서 배운 대로 옆으로 비켰지만, 피로한 발이 수레바퀴에 걸렸다. 상대의 칼이 팔을 긁었다. 베인 곳보다 먼저 뜨거운 것이 소매 안으로 흐르는 감각이 왔다.

타라가 던진 흙자루가 적의 무릎을 쳤다. 그녀는 이미 수로를 다시 건너와 있었다. 아린드라는 왜 돌아왔느냐고 물을 틈도 없이 겨우 일어나 상대를 넘어뜨렸다. 검끝을 겨눴을 때 그 병사는 왕자보다 어려 보였다. 턱에는 수염이 듬성했고, 칼을 쥔 손에는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칼을 버려라.”

상대가 알아듣지 못했다. 아린드라는 자기 빈손을 보여 주고 다시 손짓했다. 병사의 시선이 떨어진 칼과 달아나는 동료 사이를 오갔다. 아린드라가 한 걸음 물러서자 그제야 칼을 놓았다.

나머지 기병들이 물러난 뒤 타라는 그의 팔을 묶었다.

“배운 게 다 되어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나도 그랬어.”

왕자는 포로에게 물을 주었다. 그 병사는 마시기 전에 말을 가리켰다. 말도 목이 말랐다는 뜻이었다. 아린드라는 물통을 하나 더 가져오게 했다. 포로의 손은 묶되 물통을 들 수 있을 만큼 앞에 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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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 북쪽, 열 해

열 해 전, 열아홉의 왕자가 북쪽 창고에 점을 찍고 여왕에게 불려 간다.

북쪽 나루의 점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북쪽 나루의 점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그 나루가 점 하나로만 있던 때, 왕자는 열아홉이었다.

말라바의 중심 도시 다샤푸라, 그곳의 궁전에는 비가 새는 방이 하나 있었다. 왕자는 그 방을 서고로 골랐다. 물이 떨어지는 곳마다 그릇을 놓고, 그릇을 비울 때마다 책장을 넘겼다. 신하들은 그가 나라의 지붕보다 책의 마른 모서리를 더 걱정한다고 수군거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서고지기는 바닥에 마른 모래를 뿌렸다. 타라는 젖은 장부 사이에 얇은 천을 끼우고, 아린드라는 글씨가 번지기 전에 숫자를 옮겼다. 곰팡이 냄새와 등잔 기름 냄새가 섞인 방에서 그는 북쪽 마을들의 우물 깊이를 서로 맞추어 보았다. 같은 해인데도 물이 줄어드는 시기가 한 달씩 달랐다.

“이 장부는 세금 기록입니다.”

타라가 낮게 말했다.

“세금을 못 낸 이유도 기록이지.”

아린드라는 납부하지 못한 집 옆에 찍힌 표식을 따라갔다. 소가 죽은 집, 우물이 마른 집, 나루의 창고가 비어 곡식을 빌린 집. 숫자는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도에 놓으면 북쪽으로 이어졌다.

므리날리니 여왕은 그 말을 듣지 않은 척했다. 남편이 죽은 뒤 열두 해 동안 그녀는 직접 국경의 봉화를 살피고 창고의 곡식을 세었다. 어린 아들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반역자들의 이름을 읽던 날도 있었다. 이제 아린드라는 열아홉이었다. 어머니의 무릎에 앉을 나이는 지났지만, 어머니가 정한 하루에서는 아직 내려오지 못했다.

여왕이 정한 그의 아침에는 활쏘기, 말 타기, 군례가 차례로 들어 있었다. 아린드라는 활쏘기에는 늦지 않았으나 군례가 끝나기 전에 사라지곤 했다. 보고서를 받던 므리날리니는 빠진 시간까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밤마다 어디에서 목검을 드는지는 알지 못했다.

“오늘도 훈련장에 가지 않았느냐.”

여왕이 들어왔을 때 아린드라는 해묵은 수로 장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책을 덮지 않았다.

“북쪽 저수지가 예전보다 빨리 마릅니다.”

“물을 묻지 않았다.”

“물 없이는 군마도 못 움직입니다.”

아린드라는 장부를 돌려 보여 주었다. 북쪽 저수지의 준설 인원은 해마다 줄었는데 곡식을 보냈다는 기록은 그대로였다. 여왕은 숫자를 훑고도 손을 뻗지 않았다.

“장부가 틀렸다면?”

“그래서 사람을 보내 확인해야 합니다.”

“맞다면?”

“군마보다 먼저 그곳 사람들이 떠날 겁니다. 빈 나루는 누구든 차지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여왕은 더 화가 났다. 아들이 맞는 말 뒤에 숨어 대답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는 다라세나 장군의 군사들이 창을 맞추었다.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서가까지 닿았다. 아린드라는 그 소리가 잠깐 멎는 순간을 들었다. 사람 하나가 넘어지고, 누군가 웃다가, 장군의 고함에 다시 조용해졌다.

므리날리니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편이 죽은 뒤 처음 열린 군사 회의에서 장군들은 그녀가 병사 이름을 모를 것이라 여겼다. 그녀는 부상자 명부를 가져오게 해 한 사람씩 가족과 봉급을 물었다. 그 뒤로 누구도 여왕 앞에서 병력을 둥근 수로만 말하지 못했다. 아들에게도 그런 무게를 가르치고 싶었다.

“칼을 다루지 못하는 왕은 남의 칼에 나라를 맡긴다.”

“칼을 다루는 것만 아는 왕도 그렇습니다.”

여왕은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왕에게 말했으면 불경한 대답이었다. 어머니에게 말했으면 아픈 대답이었다. 어느 쪽으로 처벌해야 할지 정할 수 없었다.

“그 남의 칼을 누가 쥐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장부를 봅니다.”

“장부는 네 명령을 듣지 않는다.”

“사람도 명령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빗물이 놋그릇에 떨어졌다. 한 방울씩 일정하던 소리가 두 사람의 말이 끊긴 사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때 문밖에서 서고지기의 딸 타라가 들어왔다. 젖은 책을 옮기던 그녀의 소매에는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왕자님, 북쪽 장부의 마지막 권입니다.”

여왕은 책 밑으로 삐져나온 작은 쪽지를 보았다. 낮은 성문, 빈 창고, 우물 여섯. 아린드라가 직접 그린 지도였다.

지도에는 나루에서 다샤푸라까지 말이 쉬어 갈 곳도 표시되어 있었다. 두 곳에는 먹물을 긁어 낸 흔적이 났다. 이미 폐쇄된 역참이었다. 여왕은 아들이 궁전을 벗어나지 않고도 길의 빈 곳을 찾아냈다는 데 놀랐고, 그것을 자신에게 먼저 보이지 않았다는 데 노했다.

“누가 이것을 시켰느냐.”

“아무도요.”

“그럼 이 숫자는 누가 확인했지?”

“나루의 세금 문서와 마부들의 사료 장부를 맞췄습니다. 다라세나 장군의 행군 기록도 빌렸고요.”

“장군이 내 허락 없이 내주었느냐.”

아린드라는 잠깐 타라를 보았다. 타라가 책임을 나누어 지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그가 먼저 말했다.

“제가 돌려놓겠다고 약속하고 가져왔습니다.”

그 말은 여왕에게 자랑처럼 들렸다. 그러나 아린드라에게는 부탁이었다. 한 번쯤은 시키지 않은 일을 보아 달라는 부탁.

여왕은 장부를 돌려주었다. 아린드라의 왼손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있었다. 활을 당기는 자리와 닮았지만,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 쓸린 자국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지도를 압수할 수도 있었다. 대신 우물 하나를 손끝으로 눌렀다.

“여섯이라 적었는데 장부에는 다섯이다.”

“하나는 버려진 절 우물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직 씁니다.”

“대전에서는 장부 밖의 우물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내일 해 뜨기 전에 대전으로 와라.”

여왕이 나간 뒤 타라는 빗물을 받은 그릇을 비웠다. 문이 닫히자 아린드라는 굳은 왼손을 폈다. 어젯밤 목검에 맞은 손목이 푸르게 부어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벌입니까?”

아린드라는 대답 대신 지도에 작은 점을 찍었다. 북쪽 나루의 지붕이 없는 창고였다.

“모르겠어.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자면 안 돼.”

“대전에 가져갈 지도인데 보내도 됩니까?”

“장군이 먼저 봐야 해. 지붕 없는 창고에 군량을 쌓았으면 비 한 번으로 없어지니까.”

그는 지도를 접어 다라세나 장군 앞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접힌 선이 북쪽 나루의 점을 지나지 않도록 손톱으로 자리를 잡았다. 타라는 왕자의 얼굴을 보았다. 장난도 자랑도 없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비를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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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 북쪽, 열 해

왕자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 뒤, 북쪽 요새에 코끼리가 도착한다.

코끼리가 오는 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코끼리가 오는 밤 장면을 인도 세밀화풍으로 그린 삽화

아린드라 왕자가 왕국을 떠난 지 열 해가 지났다. 그가 지도에 찍어 두었던 북쪽 나루는 이제 적의 길이 되어 있었다.

말라바 북쪽 변경의 작은 요새에 처음 도착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먼지였다. 성루의 병사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때, 먼지 아래에서 둥근 등이 움직였다. 열두 마리의 코끼리가 간격을 두고 걸어오고 있었다.

망을 보던 병사는 종을 세 번 치고 한 번 쉬었다. 기병이 아니라 큰 짐승이라는 신호는 따로 없었다. 당직 장교가 올라와 손차양을 했다. 바람이 바뀌자 마른 풀 냄새와 함께 짐승의 축축한 냄새가 성벽까지 밀려왔다. 성 아래 나루에서는 뱃사공들이 밧줄을 끊고 마지막 배를 남쪽 물살로 띄웠다.

“밧줄을 내려라. 아이부터 올린다.”

성벽의 도르래가 삐걱거렸다. 올라온 사람은 열일곱이었고, 문밖에 남은 사람은 그보다 많았다. 먼지가 강둑을 덮기 전에 밧줄을 거두어야 했다.

후나계 군벌의 수장 바흐람은 북서쪽의 여러 세력이 다투는 동안 자기 군대를 모았다. 그의 진영에는 먼 초원에서 온 기병도, 오래전부터 인도에 살던 창병도 있었다. 빚 때문에 고용된 병사들이 다른 말로 욕을 하며 같은 물통을 돌렸다. 바흐람이 원하는 것은 여왕의 왕관보다 먼저 다샤푸라의 곡식과 통행세였다.

그는 포로로 잡은 관리에게 성문 앞에서 외치게 했다.

“문을 열면 목숨을 보전한다.”

관리의 입술은 터져 있었다.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외친 뒤 성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기 이름을 말할 기회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지휘관은 활을 내리게 했다. 포로를 쏘지 않는 것이 구할 방법은 아니었으나, 바흐람의 말을 대신했다는 이유로 죽이지는 않으려 했다.

성 안의 지휘관은 대답 대신 봉화를 올렸다. 바흐람은 더 기다리지 않았다.

첫 공격은 실패했다. 마른 해자에 박아 놓은 말뚝 때문에 코끼리가 멎었다. 성 위에서 돌이 떨어졌고, 한 기수가 어깨를 맞아 내려왔다. 바흐람의 공병들이 방패 아래로 들어가 말뚝을 뽑고 흙자루를 던졌다. 밤새 해자의 한 부분이 메워졌다.

성 안에서도 아무도 자지 못했다. 대장장이들은 화살촉을 다시 펴고, 부엌 사람들은 물에 소금을 풀어 성벽으로 날랐다. 다친 병사는 자기 몫의 물을 마시지 않고 해자 쪽을 가리켰다.

“저기, 같은 곳만 메웁니다.”

지휘관은 횃불을 가리게 했다. 어둠 속에서 흙자루가 떨어지는 둔한 소리를 세어 보니 공격로는 하나가 아니었다. 적은 가장 깊은 곳을 메우는 척하며 문 가까운 말뚝부터 뽑고 있었다. 성 안의 돌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돌을 두 군데로 나누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절반을 다시 성문 위로 돌렸다.

새벽에는 북소리가 달라졌다. 맨 앞의 코끼리 이마에는 두꺼운 가죽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등에 탄 궁수가 성 위를 향해 화살을 보냈다. 아래에서는 보병들이 젖은 가죽을 씌운 큰 방패를 들어 기수의 옆을 가렸다.

코끼리가 성문에 이마를 댔다. 처음에는 문이 버텼다. 두 번째 충격에 쇠고리가 나무 안으로 파고들었다. 세 번째에는 문 뒤의 받침목이 길게 갈라졌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는 손으로 나무를 밀었다. 자기 힘이 코끼리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했다.

옆의 병사가 그의 허리띠를 잡아당겼다. 그제야 손바닥에 박힌 나무 가시가 빠지며 피가 났다. 둘은 두 번째 받침목을 걸려고 했지만 홈이 충격으로 비틀려 들어가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코끼리의 숨이 풀무처럼 새어 들어왔다. 기수가 내는 짧은 구령과 짐승의 발톱이 돌을 긁는 소리가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렸다.

문이 터졌을 때 소리는 오히려 짧았다.

깨진 문짝이 바닥을 쓸며 밀려왔다. 코끼리 발이 그 위를 밟았고, 뒤따르던 창병들이 좁은 틈으로 쏟아졌다. 성벽 한쪽에서는 비에 약해진 흙과 돌이 공병의 지렛대 아래 무너졌다. 큰 짐승의 어깨가 밀어 올린 먼지 속으로 깃발이 사라졌다.

봉화를 지키던 소년은 불씨를 항아리에 담아 뒷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휘관은 그에게 다샤푸라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항아리를 품에 넣었다. 남문 밖 비탈에는 아직 적이 닿지 않은 염소 길이 있었다.

“불씨 말고 본 것을 가져가라. 코끼리 수, 공병의 방패, 기병이 향한 길.”

소년은 열두 마리라고 되뇌었다. 지휘관은 성 안에 남은 사람의 수를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확인하지 못한 수를 전하면 소식이 아니라 희망이나 공포가 될 뿐이었다.

도망친 전령은 사흘째 되는 밤 다샤푸라에 닿았다. 므리날리니는 젖은 망토도 벗지 않은 그를 의자에 앉혔다.

“얼마나 남았느냐.”

전령은 군사의 수를 말하려 했다. 여왕이 다시 물었다.

“성 안 사람들 말이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전령의 무릎에서 마른 진흙이 떨어졌다. 시종이 물을 내왔지만 그는 잔을 잡지 못했다. 손가락이 사흘 동안 고삐를 쥔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므리날리니는 직접 잔을 받쳐 주었다. 물을 삼킨 뒤에도 그는 마지막으로 본 성문의 모습을 말하지 못했다.

여왕은 서기관에게 새 장부를 펴게 했다. 전령이 코끼리가 지나간 간격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자 서기관은 막대 열둘을 그어 수를 맞추고, 젖은 가죽의 가림막과 기병이 향한 길은 다른 줄에 옮겼다. 생존자 수를 묻는 칸에서 펜이 멎자 여왕은 그 자리에 봉화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만 적으라고 했다. 전령은 떨리는 손으로 그 줄 아래에 자기 표식을 남겼다.

여왕은 아들에게 보낼 편지를 꺼냈다. 돌아오라고 쓰려다가 펜을 멈췄다. 자유를 약속했으니 소식을 숨겨야 하는가.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아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남겨 두는 일이었다.

그녀는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썼다. 적군의 규모와 진로,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까지 적었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다오.’

먹이 마르는 동안 그녀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왕자를 부르는 어머니의 말인지, 흩어진 병력을 모아야 하는 여왕의 말인지 스스로도 가를 수 없었다. ‘서둘러라’라고 썼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 종이 섬유가 일어나 손끝에 거칠게 걸렸다.

그 뒤에는 명령을 덧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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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바의 여왕 므리날리니와 아들 아린드라가 둔 대국, 열 해 뒤 다샤푸라를 덮친 전쟁, 그리고 두 사람의 기록이 페르시아와 동쪽으로 전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자유를 약속한 어머니는 돌아오라는 명령 대신,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사실만 편지에 적습니다.

열아홉의 아린드라는 어머니와의 대국에서 이긴 뒤 궁을 떠납니다. 열 해 후 북쪽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그는 다샤푸라로 돌아옵니다. 두 사람이 둔 판의 기록은 전쟁이 끝난 뒤 페르시아와 동쪽으로 건너가 서로 다른 놀이와 만납니다.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은 창작이며, 차투랑가와 체스, 장기가 전해진 역사적 흐름은 사실과 창작을 구분해 서술했습니다.

책으로 읽기 https://queensmove.thinktree.kr

기 · 북쪽, 열 해

북쪽 요새가 무너진 뒤, 열 해 전 아린드라가 궁을 떠나게 된 대국의 시작을 따라갑니다.

01. 코끼리가 오는 밤 https://thinktree.kr/posts/507
02. 북쪽 나루의 점 https://thinktree.kr/posts/508
03. 돌아오는 길 https://thinktree.kr/posts/509
04. 여왕의 조건 https://thinktree.kr/posts/510
05. 다샤푸라의 포위 https://thinktree.kr/posts/511

승 · 성문과 판

다샤푸라의 성문이 무너지는 동안, 여왕과 왕자가 서로 전차와 보병을 내주었던 대국의 결말이 드러납니다.

06. 새벽의 작은 판 https://thinktree.kr/posts/512
07. 무너진 성문 너머 https://thinktree.kr/posts/513
08. 전차를 내준 수 https://thinktree.kr/posts/514
09. 코끼리 부대의 새벽 https://thinktree.kr/posts/515
10. 보병을 내준 수 https://thinktree.kr/posts/516

전 · 내준 수

전쟁이 끝난 뒤 므리날리니는 왕관을 벗고, 타라가 엮은 대국의 기록은 상인의 짐에 실려 페르시아로 향합니다.

11. 책에 없는 승리 https://thinktree.kr/posts/517
12. 성문 밖의 첫날 https://thinktree.kr/posts/518
13. 왕관을 벗는 손 https://thinktree.kr/posts/519
14. 열 해의 첫 편지 https://thinktree.kr/posts/520
15. 페르시아로 가는 사본 https://thinktree.kr/posts/521

결 · 판이 떠난 뒤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진 판의 기록이 여러 규칙과 만나고, 마침내 뉴욕에서 체스와 장기가 나란히 놓입니다.

16. 동쪽 판에는 강이 있었다 https://thinktree.kr/posts/522
17. 강을 지운 장기판 https://thinktree.kr/posts/523
18. 여왕이 멀리 달리던 시대 https://thinktree.kr/posts/524
19. 바다 건너의 두 판 https://thinktree.kr/posts/525
20. 다음 수를 고르는 사람 https://thinktree.kr/posts/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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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뒤 현주는 단현고 교무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던 날에도 이 학교의 채용 공고를 보고 있었습니다. 거절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도, 첫 출근 전날 밤에도 그랬습니다.

미리 짐작한 죽음이 실제 죽음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현수의 말이 틀릴 수도 있었습니다. 현주는 그 가능성에 자신을 숨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위험을 알고도 왔습니다. 그렇다고 죽으러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교감 박성진이 교실까지 안내했습니다. 복도를 걷다가 창문 하나를 닫았습니다. 바람이 들어와 학생들이 춥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현주는 그 작은 행동을 오래 보았습니다. 현수가 이 사람에게도 말을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교실 뒤쪽에 현수가 앉아 있었습니다.

현주는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벤치 앞에 서 있던 중학생보다 어깨가 넓어졌습니다. 책상 위에는 수학여행 신청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김현주입니다. 올해 영어를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현수도 박수를 쳤습니다. 낯선 선생님을 맞는 얼굴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현주가 현수를 불렀습니다. 현수는 혼날 일이 있는지 먼저 물었습니다.

“잠들기 전에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니?”

“제가요?”

“아니야. 불편한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옆에 있던 동호가 대신 대답했습니다.

“깨우려고 흔들지만 않으시면 돼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현수는 친구에게 쓸데없는 말을 한다며 눈을 흘겼습니다. 둘은 투닥거리며 계단으로 갔습니다. 현주는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아이들의 발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알던 미래에는 없던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방과 후 교무실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 따뜻한 보리차가 놓여 있었습니다.

“커피 안 드신다면서요.”

물리 교사 한혜원이 맞은편 의자에 앉았습니다. 현주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혜원이 초록색 공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저도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교무실에는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누군가 복사 용지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사람이 나갈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현주가 물었습니다.

혜원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딸이 양손으로 귤을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아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확인하셨나요?”

“일부는요. 전부는 아닙니다.”

혜원은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현주는 공책을 펼쳐 맨 처음 그은 선을 보여주었습니다. ‘본 것’과 ‘아직 모르는 것’ 사이의 선이 삼 년 전보다 흐려져 있었습니다.

“그럼 같이 확인해요.”

혜원이 처음으로 현주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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