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속의 고향
돈 키호테의 이름에서 ‘돈’은 존칭이고, ‘데 라만차’는 라만차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이름처럼 기억하는 말 속에 호칭과 고향이 함께 들어 있는 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 빈치(da Vinci)’는 ‘빈치 출신’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성처럼 익숙하게 쓰이지만, 이 이름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빈치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하자면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입니다.
스페인어의 ‘데 라만차’와 이탈리아어의 ‘다 빈치’는 서로 다른 언어의 표현이지만, 사람의 이름에 지명을 붙여 출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라만차의 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만든 인물이고, 빈치의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스스로 기사 이름을 지었고, 다른 사람의 이름에는 고향이 남았습니다.
피렌체의 공방
레오나르도는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빈치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증인 피에로였고, 어머니의 이름은 카테리나였습니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 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 배웠습니다. 그곳에서의 배움은 그림 한 장을 그리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형태와 움직임,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는 일이 그의 작업의 바탕이 됩니다.
훗날 그의 관심은 인체와 식물, 물의 흐름, 기계와 건축으로 넓어집니다. 오늘날의 분류로는 화가의 일과 과학자의 일이 갈라져 보이지만, 그의 기록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려면 몸을 알아야 했습니다. 표정을 그리려면 얼굴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습니다. 빛을 그리려면 그림자가 생기는 방식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에게 관찰과 그림은 서로 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제단화
레오나르도에 관해 자주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대한 천재였지만 그림을 끝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그는 완성작이 전혀 없는 화가가 아닙니다. 완성해 공개된 작품도 있고, 작업을 중단한 그림도 있으며, 여러 해 동안 곁에 두고 고쳐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이 서로 다른 사정을 모두 같은 미완성으로 묶으면 그의 작업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미완성작은 〈동방박사의 경배〉입니다. 피렌체의 산 도나토 아 스코페토 수도원은 1481년 그에게 제단화를 주문했습니다. 계약상 완성 기한은 30개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떠났고, 그림은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았습니다. 후에 같은 자리를 위한 제단화는 필리피노 리피가 따로 그리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단의 배경은 이동과 새로운 활동입니다. 모든 미완성작을 그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작품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수정할 시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제작한 〈최후의 만찬〉은 1498년 무렵 완성된 대표작입니다.
이 그림은 그가 왜 오래 작업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완성과 보존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 위에 그립니다. 벽이 마르기 전에 작업해야 하므로 시간을 끌기 어렵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마른 벽 위에서 천천히 그리며 이미 그린 부분도 수정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빛과 색을 세밀하게 다듬을 시간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벽에 놓인 물감은 프레스코보다 취약했고, 환경 조건까지 겹치면서 완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상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그림이 훼손됐다는 사실과, 처음부터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은 다릅니다. 〈최후의 만찬〉은 완성한 작품이지만, 그가 선택한 실험적인 기법은 보존에 어려움을 남겼습니다.
그에게는 그림을 마칠 시간만큼, 다시 손댈 수 있는 시간도 중요했던 듯합니다. 적어도 이 작품의 제작 방식은 그렇게 읽을 근거를 제공합니다.
모나리자의 시간
〈모나리자〉를 두고도 비슷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완성된 명화처럼 감상하지만, 화가 자신은 어느 순간에 붓을 놓았을까요.
루브르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며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루브르의 2019년 전시 자료는 말년의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와 〈성 안나〉, 〈세례자 요한〉처럼 오랫동안 작업해 온 그림들을 곁에 두고 있었음을 설명합니다.
이 자료는 그가 단지 처음 떠오른 생각에만 관심을 갖고 실행을 싫어한 사람이었다는 설명과 다른 해석을 제시합니다. 회화에 관한 탐구가 오래 이어지는 제작 과정 자체에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방박사의 경배〉처럼 제작이 중단된 그림과, 〈모나리자〉처럼 오래 간직하며 다듬은 그림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후원자에게는 납품일이 필요했습니다. 화가에게는 아직 바꾸고 싶은 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완성이라는 말의 뜻이 양쪽에서 언제나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방 밖의 세상
그의 작업을 바꾼 것은 성격이나 호기심만이 아니었습니다.
1499년 프랑스군이 밀라노를 점령하고 후원자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권력을 잃으면서, 레오나르도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기반도 흔들렸습니다. 그는 피렌체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여러 도시를 오갔습니다.
화가의 시간은 후원자와 계약, 전쟁과 정권 교체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새 일자리가 생겨 떠나기도 했고, 자신이 머물던 질서가 무너져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해부학과 광학, 물과 운동을 연구했습니다. 그림 밖으로 뻗어 나간 관심은 제작에 쓸 시간을 나누었을 것이지만, 동시에 그림을 더 깊게 이해하는 바탕도 됐습니다. 그 관심을 모두 산만함으로 부르거나, 모두 천재성으로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남은 기록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작업과 이동, 연구입니다. 그것만으로 수백 년 전 인물의 정신 상태를 오늘날의 진단명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고향
1516년, 레오나르도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갔습니다. 빈치에서 출발해 피렌체와 밀라노, 로마를 거친 삶이었습니다.
그는 1519년 5월 2일,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예순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로잉과 노트는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남겼습니다. 남겨진 기록은 그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끝내 알아보고 싶어 했는지도 보여줍니다.
레오나르도가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긴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더 고치려는 작업 방식과 폭넓은 연구가 있었고, 이동과 후원의 변화, 전쟁도 있었습니다. 어떤 작품은 완성됐으며, 어떤 작품은 중단됐고, 어떤 작품은 오랫동안 화가 곁에 남았습니다.
‘다 빈치’라는 이름을 풀면 거창한 수식어 대신 작은 도시가 나옵니다.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
우리는 그의 이름 뒤에 천재라는 말을 붙이지만, 그가 남긴 종이와 그림에는 답을 얻은 사람의 솜씨와 아직 묻고 있는 사람의 손길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