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은 세 남매의 맏이로 어린 두 동생보다 아버지의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동생의 눈에는 그저 아버지는 한심한 사람에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으로만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보람이 어렸을때는 보람의 집은 어느 정도 남 부럽지 않는 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프신걸 안건 보람이 중학교에 들어 갈때 쯤입니다. 그 당시는 B형 간염 검사나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보람도 중학생이 되어서 B형 간염 검사를 했습니다. 검사결과 벌써 항원과 항체가 있었죠. 그건 이미 B형 간염에 걸려서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었다는 거죠. 그 당시는 B형간염에 대하여 무지에 가까운 수준이 었죠. 80년대가 되고 B형간염 백신이 보급되기 전에는 B형 간염은 간암의 원인 중 단연 1위였습니다. 보람이 중학교때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B형간염에 의한 간경변이 진행하고 있으니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는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잘 되어서 어머니는 치료를 잘 받고 하셔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수준이 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괜찮아지는 것 같아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보람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쯤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시던 공장을 파시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시러 이리 저리로 다니셨습니다. 그러기도 한 두달 쯤 아버지는 술을 드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보람에게 늘 다정하시던 아버지는 이젠 술에 빠져 늘 술만 먹는 그런 분이 되셨습니다. 가끔 어머니와도 다툼이 있으셨는데 외삼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른들의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외삼촌 사업이 힘들어 지면서 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술이 점점 늘던 아버지는 이제는 집에 오셔서 인사불성일 때가 많아 졌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 오시지 않자 어머니는 시장에서 이것 저것 식재료를 파시면서 돈을 벌어서 보람의 세 남매를 공부도 시키고 생활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몇일식 먼 곳에 나가서 일을 하셨습니다. 집을 짓는 곳이나 공사장에서 막노동 인부로 일을 하시는 듯 합니다. 그 때 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시장에서 팔 물건을 떼러 가시다가 버스가 급하게 출발하는 바람에 길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뒤 따라 오던 차에 치여서 크게 다치셨습니다.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문제는 다른곳에서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응급 수술로 겨우 출혈만 막고서 수술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미 어머니의 간은 간경화 상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으로는 이번 사고가 아니었어도 간경화로 돌아가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하시며 일단 병원에 입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다른 곳에 일을 나가셔서 없었습니다. 당시는 휴대 전화도 없고 일반 전화가 겨우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을 가시는 곳이 어딘지 알기에는 보람은 너무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미 어머니의 몸은 제기능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쪽 폐에 복수가 차서 등으로 굵은 주사기를 곱고 물을 빼내야 했습니다. 보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흐러는 눈물을 속으로 삮혔습니다. 별써 몇일째 학교도 가지 않고 혼자서 어머니곁을 지켜야 했습니다. 밖으로 빠져 나오려는 울음소리를 감추고 하염없이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정신이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배와 모든 장기로 물이 차기 시작해서 계속 이뇨제를 맞으며 몰핀 주사로 겨우 겨우 생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보람에게나 어머니에게나 삶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생명의 끈을 놓아 버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어머니는 차가운 시체실로 옮겨졌습니다. 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연락을 해서 동생들을 장례식장으로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어른들과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에 연락을 했습니다. 교회를 같이 가시던 아주머니 몇분이 오셔서 일을 처리 해주시고 장례식에 오신 손님을 맞을 준비도 했습니다. 어머니 영정 사진이 없어서 집에 있는 어머니 사진을 뒤지고 뒤져서 겨우 사진관에서 영정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멀리 일하러 갔다가 술에 취한 아버지를 겨우 찾아서 업어 오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정말 무능한 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보람은 어느 정도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갈증에 일어나셨고 아버지옆을 지켜 주시던 고향 친구분에게 아버지가 여쭈었습니다. "야 형식아 여기가 어디냐?" 그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시던 아버지는 그래도 여기가 장례식장인것은 눈치챘습니다. 다시 친구에게 "여기가 누구 장례식장이고?" 그 때 그 고향 친구분이 아버지의 뺨을 힘껏 때렸습니다. 술에 취해 계셨던 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고향 친구분은 아버지의 죽마고우로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었기에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늦게 어머니의 죽음을 아셨습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삼오제도 끝나갈 점에 아버지는 술을 끊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술을 절대 입에 대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나가셔서 한달에 한번 정도 돌아오시고 꼬박꼬박 그 동안 번돈을 보람에게 맞겼습니다. 보람은 갑자기 소녀 가장이 되버렸습니다. 고3이 된 보람은 4년제 간호학과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2년제 임상병리과를 지원했습니다. 임상병리과는 학교 공부보다 매년 치러지는 임상병리사 자격 시험이 더 중요했습니다. 소녀 가장에게 공부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겨우 턱걸이로 시험에 붙을 수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는 신경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보람은 어른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 보람은 당시 꽤 큰 병원에 임상병리사로 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일 동안 선배분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저녁에는 남아서 추가 교육도 받았습니다. 보람이 처음 한일은 번호표를 가지고 오시는 분의 이름을 확인하고 피를 뽑아서 작은 실험관에 넣고 원심 분리기에 이름표를 붙여서 올려 놓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프실때 병원에서 자주 보는 관경이라 별로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피 뽑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쯤 보람은 새벽 6시에 병실을 돌면서 채혈 검사가 있는 환자분들의 채혈을 하고 실험관에 이름표를 붙이고 모아 오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혈 창구에는 또 다른 후배가 배정 되었지만 보람이 창구업무에서 완전히 배제 된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병실을 도는게 훨씬 편합니다. 그러자 병원과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월급날입니다. 그것도 밝은 대낫에 퇴근하는 월급날입니다. 매일 잠든 동생을 보다가 낮에 동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반찬도 사고 고기도 조금 샀습니다. 동생들이 좋아할 반찬도 하고 벌써 대학생이 된 상식이는 집에서 학교 과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때문에 대학교를 포기하려던 상식을 겨우 말려서 대학교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벌어 오는 돈과 보람의 월급을 합하면 정직은 어렵지 않게 대학교를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직은 그래도 학교에서 공부를 곧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보람네 병리과에서는 직장을 병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나 집에서는 항상 회사라고 합니다. 일종의 암묵적인 룰입니다. 병리과 전문의 선생님들은 'OO선생'으로 좀 오래된 병리과 선배님은 대리님으로 신입딱지를 땐 직원은 주임으로 신입 직원은 그냥 이름으로 불립니다. 신입들은 누구나에게 이름뒤에 샘을 붙입니다. 과장님들은 무조건 과장님으로 불리웁니다. 다른 과 분들은 병원에서는 보람을 부럴때는 '보람샘'으로 불립니다. "보람샘" 뒤에서 보람을 부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돌아 보니 얼마전 소화기내과에 새로 오신 인턴 선생님이었습니다. 과장 선생님의 오더가 내리면 병리과로 검사의뢰를 하시는 분입니다. 뭐 다른 잡일도 다하시지만 그래도 병리과와 인연이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인턴선생과는 어쩌다 보니 자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보람이 당직일 경우나 새벽 채혈이 있는 경우 항상 있기에 새벽근무가 끝나면 김밥에 떡볶이도 같이 먹고 야간에 근무할 때 자판기 커피도 같이 하고 힘든 인턴생활의 넋두리도 보람이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얼굴이 밝아 보입니다. 그냥 얼굴색이 하얗게 보이는게 아니라 정말 빛이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람은 자기도 모르게 멍하게 그 선생의 얼굴을 빤히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자기가 휴가를 받아서 하루 동안 맘껏 쉴 수 있다면 자기랑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보람도 새벽근무를 한 이후라 조금 있으면 퇴근입니다. 두 사람은 그 때쯤 유명한 영화표를 예매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듯 비슷한 처지에 친구가 된것 같습니다. 둘다 부르는 호칭만 'OO샘'이지 반말파입니다. 나이는 인턴샘이 나이가 훨씬 많지만 병원짬은 보람이 훨씬 많습니다. 의사고시를 합격하고 얼마전에 병원에 와서 아직은 모든게 서툴은 사람입니다. 살짝궁 모성애도 자극하는 타입이라 마치 보람이 누나같을 때도 많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벌써 주위가 어뚝합니다. 저녁을 미리 예약 해두었다며 같이 가자고 합니다. 오늘따라 인턴샘이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보람은 오늘따라 달라 보이는 인턴샘을 말없이 따라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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