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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씨는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꽤 인지도가 있습니다. 지방의 음대에 학생을 교수하기도 하고 가끔 독주회와 지방시향가 공연도 하는 등 그나마 국내에서는 톱스타입니다. 남편은 그러니까 전남편은 첼리스트였습니다. 서울의 유명 음대를 같이 다닌 학교의 유명한 CC였습니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고 파리 유학도 같이 갔습니다. 유학을 가기 전 남편 쪽에서 제의가 있어서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권유로 먼저 결혼을 했습니다. 파리의 아파트는 한국의 아파트와는 달랐고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기타를 위해서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의 남편을 위해서 프랑스로 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남편의 공부는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정현 씨와는 달리 남편을 부르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쯤 정현 씨에게는 귀여워 애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때는 서울 모교에서 부교수 제의가 있어서 그는 욕심을 내서 모교에 교수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유학에 대한 학습효과입니다. 유학 때 포기한 정현 씨의 꿈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어느 이상이 되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절벽을 만납니다. 지금 남편의 상태가 꼭 그랬습니다. 남편은 먼 지방의 시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편 집안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결과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말 부부가 되었지만 모든 육아의 짐은 올곧이 정현 씨에게 맞겨졌습니다. 정현씨의 친정도 어느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정현씨의 어머니는 손녀를 너무 나도 이뻐하셔서 주 오일을 정현씨의 집에서 계셨고 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도 구해 주셔서 육아가 완전히 힘든건 아니지만 밤에 애기에게 수유를 하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생활의 리듬이 다 깨져 있었지만 그나마 학교에 있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학부 시절도 그랬지만 이 맘때의 학교 교단가 창가에 비치는 햇쌀은 정현씨를 너무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것은 이미 오래 전 입니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동안 남편은 지방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주말에 서울로 오면 거의 잠만 자고 애기에게도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일요일 오후가 오면 남편은 지방행 기차에 몸을 실습니다. 남편을 기차역까지 배웅하고 차로 돌아오는 길에 외도하는 남편을 상상했지만 그렇게 어떤 감정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학교에서 연습을 하는데 악보에 오선들이 춤을 춥니다. 음표들도 오선을 떠나 자유롭게 날아 다닙니다.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밌는 광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지금 지친 육아로 잠시 낮잠을 자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건 아니었습니다. 현실이었습니다. 음표를 따라 연주를 하다가 화음이 맞지 않는 음이라고 생각이든 음을 피하려다 다른 음을 급히 눌렀습니다. 그리고는 움직이는 악보를 꼼작 못하게 체포라도 하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 마디를 짚었습니다. 아까는 미쳐 못봤지만 그 음에는 '샾'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금전에 음도 썩였을 때 아주 풍부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연필로 조그맣게 악보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 역으로 갈때 정현씨는 이제 껏 참았던 말을 했습니다. "언제부터에요?" 남편은 무슨 소리냐는 듯한 모습으로 그녀를 쳐다 보았습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정현씨에게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정현씨는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차문을 열고 내렸습니다. 정현씨 또한 말없이 트렁크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차문으로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남편이 말없이 서류 봉투를 받자 정현씨는 말없이 차를 돌렸습니다. 근데 기분은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의지와 상관없이 흘렀습니다.울음을 소리내지는 않았지만 눈물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지만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문자가 왔습니다. 남편이 합의 이혼서류를 법원에 접수했다는 문자였습니다. 학교 레슨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또 그때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악보가 춤추는 것은 신기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친구 남편이 하는 좀 큰 안과를 찾아 갔습니다. 차를 가지고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안약을 눈에 넣을 건데 하루 정도는 운전 같은 건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때 정현씨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가 왔습니다. 뒤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처럼 잘 됐다며 오래 만에 집으로 가서 수다나 떨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여러가지 검사가 진행되었고 잠시 후 정현씨는 다시 진료실로 왔습니다. "건성 황반변성입니다" 정현씨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네?"라고 반문했습니다. 눈의 수정체가 카메라의 렌즈라면 망막은 카메라의 상이 매치는 곳인데 여기에 어떤 이유로 변형이 온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설명했지만 무슨 말인지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의사선생님의 표정으로 뭔가 심각하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병은 빠르게 진행이 되어 여름이 지날 쯤에 이미 시력의 50%정도를 잃었습니다. 사물의 형태는 볼 수 있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도 힘들었습니다.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쯤 그래도 학교는 정현씨를 학교에 남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지방의 시향과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곡 정도를 연습했습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악보를 볼 생각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고 귀는 더 좋아 진것 같습니다. 연주회 당일입니다. 애기였던 딸은 벌써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오늘은 딸이 정현씨의 눈과 지팡이가 되어 연주회 자리에 앉혀 주었습니다. 연주는 열린 음악회식으로 지휘자 선생님이 곡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휘자 선생님이 곡을 설명할때 주변의 술렁임을 눈치챌 수가 있었습니다. 두 곡을 마치고 마이크가 정현씨에게 왔습니다. 그래도 빛을 느낄 수 있어 빛이 밝게 빛나는 곳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를 향해 "첼리스트분이 누구시죠?"라고 말을 하고는 관중들에게 박수를 능청스럽게 청했습니다. 그러자 첼리스트가 마지 못해서 자리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시력을 잃고 귀는 더 예민해졌습니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서 아무것도 가져가시지 않았습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것도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시력을 잃고는 악보에 있는 노래들보다 더 풍성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까 첼리스트 분은 제가 연주를 틀렸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곡이 좀 어려워지면 첼로의 음이 너무 날까로워져서 웃음을 계속 참아야 했습니다" 첼로 소리가 들렸던 방향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으니 당신이나 잘해주시겠어요" 관중에서 웃음소리가 떠져나왔습니다. 오늘 딸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보는 날이었습니다. 딸이 어디쯤 안아 있는지 정현씨는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웃고 있는데 한 방향에서 소리를 죽인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현씨가 딸을 데려온 이유를 딸은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둘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정현씨의 엄마,아빠입니다. 엄마는 그날따라 눈물을 흘립니다. 정현씨는 딸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들의 차가 사라지는 곳을 이젠 중년이 된 첼리스트가 말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정현씨 무리는 가을로 가고 있었지만 첼리스트는 겨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같은 장소지만 두 사람은 가을로 겨울로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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