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 씨는 회사가 폐업을 하면서 갑자기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급여와 마지막달 급여까지는 받았는데 퇴직금은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실직하면 산에 갈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당장 실직을 하니 갈 곳이 없습니다. 아내에게 말을 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출근하는 복장 그대로 집을 나섭니다. 노동청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면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가 폐업한 건에 대하여 문의를 했습니다. 일단 신고서를 작성하고 소액 체단금도 신청을 했습니다. 노동청을 나오면 넓은 공원이 있습니다. 조금 생각을 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가지고 있는 재산을 조사했습니다. 가을 날씨의 따뜻함이 힘껏 현민 씨의 마음을 안아 주고 있습니다. 일단 전철을 타고 7호선 도봉산역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입구까지는 갔는데 영업사원이었던 현민 씨는 정장차림에 산에 오를려니 뭔가 좀 이상 했습니다. 그래서 산 입구의 아웃도어 매장에 갔습니다. 일단 등산 스틱을 하나 사고 혹시 구도를 맞기고 싼 등산화를 하나 살 수 있나 물었습니다. 아저씨가 기능이 좋은 등산화를 아주 싼값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5시 정도면 내려오라는 충고도 해 주셨습니다.
근처 대학생들이 같이 등산을 온 것 같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올라온 현민 씨는 복장도 정장에 대충 바지단을 양말 안으로 밀고 그 대학생들을 따라 서서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산은 초 가을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보기도 좋고 공기도 좋았습니다. 그동안은 회사일에 엄청 힘들었습니다. 공장이 잘 될 때는 엄청 바빴지만 갑자기 공장이 힘들어지기 시작해서 영업을 가도 헛탕을 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늘 사장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사장님도 결심을 하신 듯했습니다. 모든 직원을 직원 식당으로 부러시고는 지금 회사 사정이랑 갑자기 경쟁사가 출혈 경쟁을 하는 바람에 물건을 하나 팔면 팔 수록 적자가 더 심해져 더 이상은 공장을 계속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너무 착한 분이십니다. 자기 사비까지 털어 직원들의 월급을 주시고 연차가 조금 되는 사람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공장의 기계들을 정리하면 그 돈으로 직원들의 퇴직금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전에 정부에서 폐업한 회사 직원들에게 주는 채단금을 신청하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회사의 젊은 대리들이 추진력도 좋고 해서 직원 대표가 되었습니다.
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회사 외에는 그 장비를 만들 수 없었는데 어떻게 경쟁사가 그 장비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벌써 산 중턱까지 왔습니다.
도봉산은 바위산이라 중간중간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중간중간 철근으로 만들어진 줄을 잡고 올라가기도 하고 산을 오르다 내리다 해야 정상까지 갈 수 있습니다. 사실 정상도 정상이 아닙니다. 바위산 꼭대기는 자운봉이지만 사실 민간인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철심과 철봉을 잡고 한참을 올라 바위산 정상에 서니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안 되는 영업 하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공장 사장님들한테 문전박대를 당할 땐 속도 너무 상했습니다. 그랬던 생각이 어느새 속이 시원해지면서 다 잊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현민 씨는 이번이 3번째 직장입니다. 처음에는 공대를 나와서 기술직으로 일을 했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그렇게 잘한 편이 아니라 늘 남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영업부 부장님에게 가서 자신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부장님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회사를 차릴 맘을 먹고 있어서 갑자기 둘이 의기투합이 되어서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기계며 산업용 PC를 대만과 중국에서 값싸게 사 와서 일반 회사에 판매도 하고 대기업 기계실에 설치도 하고 반 영업 반 막일이지만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마침 경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부장님은 미련 없이 바로 회사를 접고 전체 수익의 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회사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 사장님의 기술력과 아이템이면 당장에 주식회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상장만 하면 대박 전자 회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산 정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자신은 하나도 잘 못 한 게 없었는데 두 번이나 경제 위기를 맞았고 그때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한마디 말도 못 했습니다. 나중에 지역 건강보험증이 나오면 그때서야 알고는 했었습니다. 그를 때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산을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왔던 길로 철심과 철봉을 잡고 한참을 내려가다가 그만 발을 헛딧고 말았습니다.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그만 아래로 굴렀습니다. 말이 굴렀다지 한참을 미끄러져 내려 옷이 다 떨어지고 한쪽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전화기는 현민 씨 보다 먼저 떨어져 액정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다행히 아까 같이 온 대학생들 중 하나가 현민 씨가 사고 나는 것을 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산악 구조대가 금방 올라왔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것 같습니다. 무전으로 헬기를 불렀습니다.
여기는 주변 주민들에게는 악명이 높은 곳입니다. 헬기 소리가 나면 바로 또 사고구나 하는 곳입니다. 다리만 부러진 줄 알았는데 머리에 뇌진탕 증상이 있습니다. 갑자기 어지러움증이 생기더니 기절해 버렸습니다. 헬기가 도착하고 금방 근처 병원으로 이동을 했지만 현민 씨의 의식은 돌아올 줄을 모릅니다. 소식을 듣고 현민 씨의 아내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옷 속에 명함을 보고 회사 사장님에게 전화가 갔고 회사 사장님이 현민 씨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회사 사장님은 회사 폐업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현민 씨의 아내에게 전달이 되었고 벌써부터 현민 씨의 아내는 눈물로 눈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이야기를 겨우 하고는 그때부터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현민 씨 아내를 부축해서 응급실까지 안내를 해 주시고 택시비도 받지 않으시고 가셨습니다. 현민 씨 아내가 택시비를 주려고 했지만 고사하셨습니다. 현민 씨는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고 CT상에 다행히 다친 장기는 없었지만 갈비뼈도 몇 개 부러진 것으로 나왔습니다. 병실이 정해지고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응급 수술이 잡혔습니다. 부러진 다리에 철심을 밖은 수술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회사가 폐업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 현민 씨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현민 씨 옆을 지켰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현민 씨의 의식이 돌아왔고 어제 있었던 일 일부를 기억하지는 못 했지만 산 앞 가게에 맞긴 신발은 기억이 났습니다. 가계 아저씨에게 사정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옆을 지켜 준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고 마취가 되고 일어나 보니 자신의 병실입니다. 일어나 보니 회사가 망해서 자살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넉살 좋은 현민 씨였습니다. 현민 씨 우스개 소리에 온 병실이 즐겁습니다. 병실에 아침 햇살이 아직 가을이 남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